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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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나라 가전 전 무엇보다 힘쓸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3~17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를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그네입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도 나그네입니다.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 인생이지만 짧은 나그넷길 가운데서도 일이 참 많습니다. 괴로운 일도 있고 슬픈 일, 분통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허파가 뒤집어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괴롭고 힘들어 꼭 죽을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길이 없을 것만 같고 하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때가 있기도 하며 내 인생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을 때는 그 시간이 한없이 깁니다.
그러나 잘 아십시오. 그 모든 일이 금방 지나갑니다. 오래 가지 않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을 때는 고통을 보지 말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십시오. 하늘에서 고통 앓이를 나를 내려다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곧 끝납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인생을 단면적으로 보지 않고 길게 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모두 알 것이 있습니다. 영광, 명예, 대단한 것, 반대로 초라한 것, 아픔과 상처 다 잠시입니다. 금방 끝이 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베드로전서 1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또 시편 90편의 말씀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잠시 잠깐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그것으로 정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인생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힙 9:27)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오늘 본문은 이것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신하십시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았느냐는 나중 영원한 삶에 결과가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것이 아닙니다. 말도 행동도 그렇고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다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특히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삼가고 조심하는 것도 약간 조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허리띠를 불끈 조여서 계속해서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이 땅에 사는 한평생 내내 바짝 허리를 동여도 잠시 잠깐일 뿐입니다. 영원한 날에 비하면 아주 잠시일 뿐입니다.
두 번째,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욕은 헬라어로 ‘에피뒤미아’이고 영어성경은 ‘evil desire’라고 표현합니다. 악한 갈망, 악한 욕심이 되겠습니다. 악한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 1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잠언서 30장 15절에서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쓰십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욕심에 차여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서 거머리 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머리는 한번 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몸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빼내기가 아주 힘듭니다. 깊이 들어가면 칼로 살갗을 베어서 떼어내야 할 정도입니다. 욕심이 그렇습니다. 욕심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듭니다. 아예 욕심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만큼은 꼭 있어야 하겠다,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 하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 다음,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 즉 다른, 세상과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인은 무언가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달라야 하고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가장 좋은 예를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왜 음부에 떨어졌습니까? 왜 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비싼 옷이지만 자기 돈으로 사 입었고 비싼 음식이지만 자기 돈으로 사 먹었는데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논리이지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내 돈이라고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가 자기 상에서 떨어진 음식 찌꺼기나 먹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었습니다. 자기 집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든지 다른 사람 통해서 하든지 도와야 합니다. 먹이고 치료해주어야 합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그냥 내버려 둔 것은 죄였습니다.
인생 살면서 힘든 분들 계십니다. 고달픈 분도 계십니다. 괴로운 일이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잘 아십시오. 금방 지나갑니다. 오래 가지 않습니다. 거기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십시오. 골로새서 3장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세상의 것에는 눈을 떼십시오. 내 자식, 내 것에 관심을 덜 가지고 자주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힘쓰십시오. 불쌍한 사람을 도우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돕고 못 배운 아이들을 공부하도록 해주고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을 치료받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신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음식 먹다가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 정도 주는 것은 돕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몇 푼 더했다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에게 힘이 다소 부칠 정도까지 힘쓰고 애쓰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원하시는 정도입니다.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주면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지 모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복음을 전하시고 힘들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도우십시오. 요한계시록 2장에서 심판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계 2:23)
베드로를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시 들으십시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생각해 봅시다]
1. “‘이 일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은 일이 있었나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버티셨는지 함께 나눠봅시다.
2. “‘이건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하고 그냥 넘긴 부분이 있나요?” 그 영역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꾼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3. 주님 나라 가기 전 힘쓸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면,” 지금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작은 실천 한 가지를 함께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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