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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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을 기쁨, 행복...
고린도전서 13:8~13
사랑은 능력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이 능력이라는 말은 확고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졌고 앞으로 점점 더 확실하게 그 증거가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언, 방언, 지식 등의 영적 은사들은 정말로 귀한 은사입니다.
예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된 길로 가게 하며, 망하지 않도록 하고 죽을 길을 피하도록 합니다. 바르게 살게 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 복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을 복 받게 하는 것이 예언의 역할입니다.
방언을 받으면 무척 좋고 행복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될 것 같고 그것만 있으면 살 것 같습니다.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또 방언을 받게 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확신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천국에 못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천국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며 부활은 과연 있는 것인가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받으면 그 모든 것이 확신이 생깁니다. 천국은 있다, 부활도 틀림없이 있다, 나는 틀림없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나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이 서게 됩니다.
방언을 받으면 하나님과 자기가 특별한 관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이고 하나님은 나를 특별하게 귀하게 여기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 결과 인생 자체에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아집니다, 세상이 뒤집혀도 자기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언이 좀 시끄럽기는 해도 방언은 이런 귀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귀한 방언도 때가 되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식도 폐하리라!’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 지식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지식입니다. 세상 지식에는 학문적 지식, 세상 살아가는데 실제로 필요한 생활지식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도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만 읽고 찬송만 하고 교회 와서 신앙생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도 보고 책도 보아야 합니다.
영적 지식은 세상 지식 이상으로 귀합니다. 영적 지식이 귀한 첫 번째는 영적 지식이 구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식이 귀한 또 하나는 ‘복’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가? 어떤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받은 복까지도 빼앗기는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고 무엇을 좋아하시며 어떤 사람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에 대한 지식 이것이 영적 지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단한 지식, 세상 지식 그리고 영적 지식도 때가 되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어 폐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세상적으로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3장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교회를 박해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큰 자랑이었고 필수적인 덕목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까지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22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이 말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울이 최고 중의 최고라는 말입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가장 대단했던 것은 학문적인 지식입니다. 바울은 공부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로마 총독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심문을 받고 있는 바울에게 총독이 한 말입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
이 정도로 바울은 학문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말했습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7-8)
세상의 부귀영화,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대단한 학문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것은 하나의 ’배설물과 오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낙엽처럼 다 떨어지고 안개처럼 날아가 버리고 없어져도 끝까지 남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는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귀한 세 가지 중에서도 으뜸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야말로 귀한 것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그러나 잘 알 것이 있습니다. 최고 중의 최고인 사랑은 쉽게, 대강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신비하고 특별한 무엇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4-7)
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이런 사랑을 하십시오.
크게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을 것 같지만 이 사랑은 그러나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사랑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이런 사랑을 주십시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사랑을 하든지 혹은 우선 이런 사랑을 위한 기도라도 한다면 여러분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 행복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
1. 일상 속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는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2. 예수님을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쌓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 정보와 지식에 몰두하고 있나요?
3.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의 행복’을 어떻게 지켜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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