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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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인격, 기품 있는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3:4)
인간은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사랑할 때 그리고 사랑받을 때 행복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랑은 ‘아무렇게나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이라야 가능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나를 희생하고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아가페의 사랑이어야 가능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할 때 사람은 가장 아름다워지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설명하십니다.
먼저 참된 사랑, 아가페의 사랑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참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방언 등 영적 은사도 그렇고 세상적인 은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은사를 많이 받았지만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수많은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그 까닭을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최고 중의 최고 은사인 사랑을 사모하고 받으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자기의 인생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달라집니다. 사랑의 은사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렇게 좋은 재산을 받고서도 진정한 복으로 만들지 못한, 축복이 되지 못한 재산이 많습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병들었다가 나은 사람을 두고 바깥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해도 속으로 저 사람은 계속해서 병들어 누워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귀한 자녀를 복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참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참된 사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의 인격이 달라진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너무 약한 존재입니다. 상황과 여건이 좋아지면 큰소리치고 교만하다는 말을 듣는 일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다 일이 안 풀리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기가 죽어 소금 절인 배추처럼 초라해지고 비굴해집니다.
상황이 아무리 좋아지고 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고 가슴 아픈 일이 있어도 여전히 품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더 품위가 좋아지고 멋짐이 나아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격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 그런 인격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어떤 인격이 따르는가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3장 4절은 다섯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사랑이 있으면 오래 참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래 참는다는 말의 원어인 헬라어는 ‘마크로뒤메오’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참는다는 뜻과 함께 인내한다,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잘 참는다, 잘 인내한다, 잘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참 큰 복이고 대단한 인격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성경은 두 번째로 온유해진다고 말씀합니다.
온유는 헬라어로 ‘크레스토스입니다. 온화하다, 친절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이란 존재는 본래적으로 온유하고 온화하고 친절하고 선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란 마치 온유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친절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선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완악해지고 강퍅해지고 불친절해지기를 더 좋아하는 존재인 것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온유하고 온화하고 친절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말하는 재미있는 예例가 있습니다. 프랑스 니스의 한 카페에 ‘커피!’ 7유로!, ‘커피 플리즈’ 4.25유로! ‘헬로 커피 플리즈!’ 1.4유로! 라는 가격표가 붙었다고 합니다. ‘커피, 라고 반말하는 손님은 만원 내십시오. 커피 주세요 라고 말하는 손님은 6천원 내십시오.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손님은 천원만 내시면 됩니다’라는 말입니다. 종업원들이 얼마나 힘들고 속상한 일들이 많았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성경은 사랑은 온유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온유해지고 친절해지고 선해집니다.
세 번째, 사랑이 있으면 시기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시기라는 말의 헬라어는 ‘젤로오’입니다. 여기에는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툼이 없다, 시끄러움이 없다는 의미까지 같이 있습니다. 시기가 있으면 시끄러워집니다. 소란스러워집니다. 사람이 추해집니다. 그런 곳은 사람이 살 곳이 되지 못합니다. 나도 추해지고 내가 있는 곳을 추하게 만들고, 나도 시끄러워지고 다른 사람들을 시끄럽게 만듭니다. 사회를, 가정을 시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추해질 수밖에 없는 곳에, 싸움이 있고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이상하게 다툼이 안 생깁니다. 싸움이 안 생깁니다.
네 번째, 사랑이 있으면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랑은 헬라어로는 ‘헤르페로스’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허풍떤다는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아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허풍떠는 사람이 있고 또 뭐 좀 되는 사람에게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자랑하고 허풍 떨고 아첨하는지 아십니까? 속이 비어있어서 그렇습니다. 내 속에 든 것이 없기 때문에 뭔가 겉으로 드러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만 의식합니다. 참으로 딱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심지어 내 가정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구제불능일 것 같은 사람이라도 진실한 사랑, 아가페의 사랑을 소유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허풍 떨지도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게 아첨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당당해집니다. 멋있어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비어있던 속이 대단한 것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겁나는 것 없습니다. 떠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고인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사랑이 있으면 교만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겸손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교만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정확하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 가정, 사회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는 적어도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이것은 나도 힘들게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교만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교만이 사라집니다.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희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라,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사랑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
[생각해 봅시다]
1.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어떤 인격이 따르게 되나요?
2. 나에게는 사랑의 은사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사랑의 은사로 우리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섬길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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