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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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를 통해서 핵심적으로 가르치시는 것
민수기 1:1~7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그 38년 광야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는 38년 광야에서의 일들 전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일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광야 38년 생활을 통해서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지,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은 이 험한 세상에서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民數記는 인구조사로 시작했다가 인구조사로 끝납니다. 민수기의 인구조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조사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전쟁입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3)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에게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란 전투를 위한 군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천성을 향해 진군하는 군대입니다.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전투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냥 편하게 즐기는 모임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는 ‘쉽게 다니기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적과 싸우는 군대입니다. 교회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악이라는 적, 죄라는 적, 어둠이라는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그냥 당합니다. 전투를 위한 군대라는 말씀은 전투할 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자들 중에 알 만한 사람들, 알아야 할 사람들, 특히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교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알 만한 사람들, 깨어 있어야 할 사람들, 지휘관들, 중직을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자기 인생이 망합니다. 자기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고 교회가 망합니다.
물론 교인이라고 다 나서서 전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되..’(3) 양육 받아야 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 보호를 받아야 할 여성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전투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은 참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투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은 자기 몫만 감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몫까지 다 감당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스무 살 이전에 있는 남녀 그리고 여성들의 몫, 나이 든 사람들의 몫까지 다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대에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본문 5절부터 각 지파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누가 정했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이름을 거명하면서 정하셨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 절대 조심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 내가 바라는 사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닌 정도’에 그치지 않고 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려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일단 정해진 방법과 과정에 따라 지도자가 결정되었다면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뽑힌 지도자들은 ‘내가’ ‘우리가’ 뽑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지 간에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 지도자 당사자들이 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지도자라는 자리가 벼슬이나 특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교회지도자들에게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수고해야 하고 더 많이 희생해야 하는 특권입니다. 죽는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을 특권 이것이 교회지도자들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60만 명이나 되는 군사의 숫자를 세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최고의 지도자인 모세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각 지파의 우두머리 지휘관들이 직접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특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우리가 특권 누리려고 하고 우리가 영광 받으려고 하고 우리가 무엇을 누리려고 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라는 직분 자체는 명예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그 자체가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직분, 지도자라는 직분이 명예와 축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까요?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직분이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서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잘못 감당하게 되면 축복은커녕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것, 가지고 있던 것까지 다 잃어버리고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직분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반대로 잘 감당하게 되면,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자기가 맡아야 할 자리를 잘 지키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 놀라운 축복을 받기도 하고 커다란 명예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4장에서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4:25) 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곳이 직분입니다.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서 이미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누리게 되고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고 만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볼 것이 있습니다. 군대편성을 위한 인구조사 때 있었던 중요한 일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한 지파인 레위지파에게는 인구조사의 계수에 넣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지파는 열 두 지파 중 하나로 이스라엘 전체의 1/12이 됩니다. 한 사람의 군인이 아쉬운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징집대상에서 면제시키라고 명령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것이 앞으로 이스라엘의 전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일이 됩니다.
레위인들을 전투에서 면제시키고 이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셨는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민 1:50-51)
군대에서 면제하고 레위인들에게 맡기신 것을 가만히 보면 전쟁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아예 전쟁에 보내지 말고 그 일만 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바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별것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별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전쟁 승리의 핵심입니다.
이것으로 하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의 승리는, 기독교 신자들, 기독교 교회의 승리는 얼마나 전쟁을 잘하느냐? 사업을 얼마나 잘하느냐?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고 얼마나 밑천이 얼마나 많으냐?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승패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는가? 즉 신앙을 얼마나 잘 하는가?’ 여기에 걸려있다는 말씀입니다. ♥
1. 내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악, 죄, 어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교회의 지도자로써(구역, 기관, 부서 등) 내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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