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기독교 신자들은,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누가복음 6:43~49
위기가 사람을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위기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6장 첫머리는 예수님께 대한 시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음모와 위기로 이어집니다. 분위기가 아주 흉흉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일행을 비난합니다. 고발할 증거를 찾기 위해서 온갖 애를 다 쓰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처치할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본격적인 공격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런 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오늘의 신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바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무엇으로 어둠과 싸워야 하는가? 무엇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은 ‘먼저 기도이다’, ‘무엇보다 기도이다’, ‘항상 기도해야 한다’, ‘특별히 기도해야 한다’ 그저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위기에 맨 처음 하신 일이 기도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12)
기독교 신자들은 보통 때도 그렇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평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잘 알 것은 ‘나도 기도는 했습니다.’라고 핑계하고 변명할 정도의 기도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흉내만 내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저 한 번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온 힘을 다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도 할 수 있고 그 자리에 앉아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데서도 할 수 있고 쉽고 편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것도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냥 하는 기도’, 그것은 아닙니다. 모양만 낸 기도, 흉내만 내는 기도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일이야 얼마든지 예수님 혼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예수님 혼자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혼자 그 일을 하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하시려고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한한 생명이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나면 그 뒤에 그 일을 계속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중요한 이유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누구를 제자로 세울까?’
사실 당시 예수님께서 세우신 제자들은 우린 눈으로 볼 때 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그 정도 사람들로 무슨 일을 할까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스승 예수님을 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을 세우기는 세워야겠는데 세울만한 사람이 없다는 등의 핑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자를 세우지 못할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교회, 교회지도자들은 제자들을 세워야 합니다. 제자를 세우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최고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20)
세우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가르치는 것도 계속해야 합니다.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고, 제자 된 사람들은 내가 신자 되었다, 제자 되었다고 끝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것을 중단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신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었고 제자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또 겉으로 대단히 성숙한 모습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제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기를 거부한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이미 끝난 인생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모습일지라도 배우기를 끝낸 사람은 죽은 인생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더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이름 자체에 배운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제자라고 하면서 배우지 아니하는 사람,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신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세우신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46)
이 말씀의 뜻은 제자라면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겉모습이 아무리 갖추어진 제자의 모습이라도 제자가 아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다, 내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달란트 비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장사를 잘해서 돈을 남겼기 때문에 칭찬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칭찬받은 까닭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책망받고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긴 까닭은 돈을 못 불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 마태복음 7장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강하게 책망하셨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냈고, 주의 이름을 많은 권능으로 행했습니다. 전부 다 주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호되게 책망하실까요? 순종 때문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것 좋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이라는 말씀입니다. 본질이 없는 제자, 그 사람은 제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순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참으로 험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위기가 가득한 이 세상, 참으로 복잡한 세상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아들딸들이 어떻게 이 어려운 세상을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겠는가?’ 걱정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험한 세상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순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신자들의 싸움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의 대장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신자들이 할 일은 순종입니다. 참으로 딱한 것은 신자들이 급하면 이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당장 눈에 보이는 급한 것만 생각하다가 ‘내’가 무엇을 할까? 이 일을 해야 할까? 저 일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대장 예수님 생각하는 것에 실패하고 맙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지 없든지 항상 생각할 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잘할까?’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주님께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급할 때일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가? 내가 무엇을 순종할 것인지를 생각하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무엇을 할까? 그것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
[생각해봅시다]
1. 결정의 순간이나 위기가 닥쳐올 때, 나의 기도는 온힘을 다하는 기도입니까. 그냥 하는 기도입니까?
2. 주님의 제자가 되기위해 내 삶에서 내 뜻과 경험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3. 지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가 당장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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