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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아지고 높이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23:1-12)
    2025-11-07 14:27: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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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아지고 높이시는 하나님’ (23:1-12)

     

    18세기 독일의 희곡작가 레싱은 현자 나탄이라는 작품을 통해 참된 종교를 분별하는 법을 말해줍니다.

     

    옛날 동방의 어느 나라에 살던 한 남자는 아주 귀한 반지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 반지는 신통력이 있어 그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신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의 반지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그것이 대대로 이어온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반지가 아들 셋을 둔 아버지에게 넘어왔는데, 그 아들들은 하나같이 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누구하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반지는 하나고, 아들은 셋이니 문제였습니다. 고민 끝에 아버지는 세공사를 불러 그와 똑같은 반지 두 개를 더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세공사는 정말 일을 잘해서 아버지조차 어느 것이 진품인지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반지들을 각각 세 아들에게 끼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들은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주장했습니다. 다투던 그들은 결국 재판관에게 가서 판결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진품을 구별할 수 없어 난감해진 재판관은 한참을 고민 끝에 이렇게 명판결을 내렸습니다. “싸울 필요 없다. 너희들 중에 진짜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삶이 증명해줄 것이다.”

     

    복음을 믿고 확신하는 우리는 기독교가 진짜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기독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최근 수년째 한국교회가 사회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 기독교 기관의 설문에 따르면 교회를 신뢰하는가? 목사와 기독교인들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가는가?’ 하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교회는 그동안 세상의 소금이 되고자 노력했는데, ‘소금은커녕 세상은 오히려 기독교인들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려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맛을 잃어버리니 아무 쓸데 없어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왜 우리는 신앙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고, 세상에서 점점 더 버림받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3~7절에서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크게 4가지로 지적하십니다. 첫 번째는 언행의 불일치입니다. 옳은 말을 할 줄은 알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헐벗고 양식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은 해도 그들을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네 번째, 그들은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높은 곳에 앉기를 좋아했고, 랍비, 아비, 지도자라 칭함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의 스승이 되려고 하지 말라, 참된 스승은 오직 그리스도니 너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라.”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언행 불일치, 무관심, 사람들을 의식하고, 칭찬 듣기 좋아했던 모든 외식적인 신앙에 대해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이 말씀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찾아가셔서 언젠가 반드시 그를 낮추실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를 높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

     

    왜 이렇게 기독교가 낮아지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낮추셨을까? 기독교가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더 높아지려 했고, 재물을 더 쌓으려고만 했고, 성공에만 집착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통해 정치와 재물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낮추신 것입니다.

     

    수 년전에 기독교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단어가 있었습니다. ‘고지론이라는 단어입니다. ‘고지를 점령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해라, 유명해져라. 그러면 전도를 해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우리가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데 예수 믿으라고 말하면 너나 믿으라고 하지 않겠느냐그러니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세상에서 높은 곳에 올라 복음을 전하자는 내용입니다.

     

    언뜻 들으면 묘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시니 많은 청년들의 가슴은 뛰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도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시면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지가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있느냐? 입니다. 그 신앙의 논리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저런 복을 받는구나..’하고 설령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무엇이 될까요? 그들은 십자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죄의 본성과 옛 성품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를 성령으로 새롭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빚어지는 새 사람이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비추는 빛과 소금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렬할지는 보지 못하고,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통해 한자리 얻고자 했던 실패했던 제자들의 뒤를 똑같이 따라갈 것입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다시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팔고, 곤란한 순간이 찾아오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수님의 길과 나의 길이 전혀 다름을 알게되었을 때는 예수님을 못 박는 폭도로 변해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성공으로 영혼이 변화되고 복음이 전파된다면 예수님께서는 굳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하사지만 복음이 아닌 것을 가르치고 따르는 자들’, ‘예수님을 통해 성공과 출세의 길로만 가고자 하는 자들은 낮추십니다. 반대로 마음속에 예수님을 참된 인격으로 만나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며, 섬기는 삶과 낮아지는 삶을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복음은 우리의 체질을 변화시킵니다. 죄의 본성상 남을 섬길 수 없는 우리가 남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고, 출세와 돈과 성공이 아니고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으로 만족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이 높아지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섬김받기 위해 스스로 힘을 쓰며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내가 낮출 것이요,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내가 높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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