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5호 -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것 (사도행전 5:1`2-16)
    2026-05-26 11:52:58
    관리자
    조회수   33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것

     

     사도행전 5:1`2-16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가 크게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가 교회다운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참으로 교회다웠습니다. 교인들은 행복했고 교회는 정말로 교회다웠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두 교인다웠습니다. 정말로 성도다웠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또 초대교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40년간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한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는 그 한마디 말에 벌떡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상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통회 자복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2:36) 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매우 단순한 설교입니다. 그렇게 잘한 설교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교회로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는 성도가 아닌 것 같은 교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맨 처음 교회가 시작된 아주 특별한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란 이런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교회에 성도 같지 않은 사람, 교인 같지 않는 사람은 족집게로 뽑아버렸습니다. 초대교회는 거룩함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 교인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했고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았습니다. 그 정도면 칭송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같은 무서운 사건이 교회에 일어났으니 얼핏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경원시 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교회는 갈 곳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교회는 권세가 있었으며 더 칭송을 받았고 더 부흥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실 초대교회의 그 위대한 교회 지도자들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 신자들의 모습과 똑같았고, 바로 얼마 전까지의 초대 교회의 모습도 오늘날 교회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혼란에 빠졌습니다. 패배감에 휩싸였습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잡혀갈까 하여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그 안에 숨어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기나잡으러 나갔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로 바뀌었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 하나입니다.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교회에 신자들에게 있는가, 아닌가?’ 여기에 따라서 그 차이가 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초대교회의 전신前身 교회는 활기가 있었습니다. 용기가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그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 뒤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자 예수님께서 계실 때 있었던 모든 것이 다 회복되었습니다.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기독교인들도 이럴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기력하고 교인들이 교회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까닭은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달라집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바뀝니다. 다 바뀝니다. 인생도 바뀌고 가정도 바뀌고 교회도 바뀝니다. 신자들의 삶은 활기와 생기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아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하시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성경이 재미있습니다. 찬송이 기도가 재미있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때 교회와 신자들이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고 분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

    무기력함에 휩싸였던 제자들, 패배감에 휩싸였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1장 기록입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4)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마음을 합했습니다.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예수님께서 영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자 다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온 맘을 다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점만 찍고 나가는 기도가 아닙니다.

    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예수님을 <계속> 목말라 하고, <계속> 예수님께 가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마시면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잠시 동안 그리고 어느 정도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성령님 충만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6-7)

    그런 삶을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아들딸, 손주들에게 이어서 살되 <항상> <모든 힘을 다해서>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신 말슴이 있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6:8-9)

    눈 속에, 머릿속에, 가슴 속에,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자녀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령 충만함을 위한 길입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무엇이 초대교회를 그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무기력하고 패배감이 가득했고 혼란했던 초대교회의 신자들을 성도다운 신자들, 행복한 교인들로 만들었습니까?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이 충만하면 이런 일, 이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교회에 있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재미있고 즐거운가요?

    2. 나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나요?

    3.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내가 바꾸어야 할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나요?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167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6호 - 언제 어디서나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사람(시편 23:1-6) 관리자 2026-05-26 38
    166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5호 -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것 (사도행전 5:1`2-16) 관리자 2026-05-26 33
    165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4호 -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신자라면.. 때로는 여유 없는 신자라도...(신 24:19-2) 관리자 2026-05-16 48
    164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3호 -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시편 23:1) 관리자 2026-05-12 35
    163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2호 - 모자라고 시원찮은 나 같은 사람도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6:5~7) 관리자 2026-05-07 38
    162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1호- 진정한 기독교신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한복음 14:16~18) 관리자 2026-04-19 59
    161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0호 -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사람(시편 23:1~6) 관리자 2026-04-14 70
    160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9호 - 남의 자식 부탁 부탁도 들어주시는데 하물며....(마태복음 15:21~28) 관리자 2026-04-08 76
    159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8호 - 환경과 여건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 (시편 23:1~6) 관리자 2026-03-25 88
    158 [구역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7 호 - 죽을 만큼 큰 죄를 짓고도 도리어 큰 사랑을 받은 사람 ( 시편 51:1~17) 관리자 2026-03-25 64
    157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6호 - 잔소리 같은 말씀을 그토록 절절하게 하시는 까닭 (신 8:11-20) 관리자 2025-11-28 116
    156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5호 - 주님 나라 가전 전 무엇보다 힘쓸 것이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13~17  ) 관리자 2025-11-21 112
    155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4호- 나는 일류시민 삼류시민 중 어디에 속할까요?(마태복음 11:28~30) 관리자 2025-11-21 103
    154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43호 - 사는 길이 있고 죽는 길이 있습니다(창세기 4:1~14) 관리자 2025-11-07 114
    153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 강단 342호 - 빼앗기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을 기쁨, 행복... (고린도전서 13:8~13) 관리자 2025-10-31 112
    1 2 3 4 5 6 7 8 9 10 ... 12